가족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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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캔, Jan 2, 2009 - Literary Collections - 26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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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한번쯤 품게 되는 ‘버려진 아이’에 대한 환상은 아이가 최초로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고 가족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아이는 어딘가에 자신을 낳아준 생부와 생모가 존재할 거라 믿고 자신의 신분 또한 지금과는 영 딴판인 공주이거나 왕자일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던 가족과 가정이 위태롭다. 풍문으로만 들려오던 일들이 더이상 나와 무관하지 않다. 단절과 침묵. 소통되지 않는 가족 안에서 나는 더 외롭다. 이젠 어른들조차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던 ‘버려진 아이’에 대한 악몽이 되살아난다. 진정한 내 가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별아는 우리가 무감각하게 흘려버리거나 쉬쉬하는 일들을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직선적인 문장들은 속도 붙은 화살 같다. 환부를 찾아내고 도려내려는 시도들에서 여문 손끝을 느끼게 한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의 펄떡이는 문제의식들과 만났다. 섣부르게 ‘가족 환타지’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달밤, 떨어뜨린 조약돌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이었다. 조약돌 끝에는 따뜻한 불을 밝힌 집의 창들이 있을 것이다.
_하성란(소설가)

에덴 이후 매일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나 한번도 새로운 가족이 출현한 적은 없다. 통념과 억압, 질서와 세습에 순치되어 낡아버린 둥지. 지극히 상식을 중히 여기는 이 지리멸렬한 산문 세계를 부수는 김별아의 메시지는 ‘가족의 복원’이다. 작가가 성찰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최초의 가족’이다. 사유의 대목마다 기억이 새로웠고, 어느 한 구절 통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비가 갓 된 나는 인류를 향해 엎드린 한 어머니의 말씀을 경청하였다.
_전성태(소설가)

김별아 씨 직업은 소설가, 나는 비평가다.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 출입하게 되면서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작가가 바로 김별아 씨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만큼 잘 안다면 안다고나 할까?
그러나 갈수록 모를 사람이 바로 김별아 씨다. 놀랄 만한 단순성 뒤에 복잡함이 숨어 있다. 전통적 이미지 강한 강릉 출신답지 않게 정열과 일탈이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된 김별아 씨의 새로운 에세이집을 통해서 나는 김별아 씨의 이러한 면모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겉으로 보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온한 작가적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자기를 둘러싼 가족적 관계를 섬세하게 성찰해 가는 사람이 바로 작가 김별아 씨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보편적인 고민을 개성적으로 풀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다. 에세이는 과연 사람을 더 밀도 있게 느끼게 해주는 장르인 것이다.
_방민호(평론가)




가족, 그 끈끈한 인연
가장이라는 이유로 비 오는 날 목숨을 걸고 전신주를 올라야 하고 또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구원이며 의지 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당위성이 지금 우리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까? 내면을 들여다 들여다본다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상처 받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김별아는 그 지점을 정확히 짚고,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지 산뜻하게 묻는다.

가족은 단순한 구원처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의 진원지도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구원을 제공할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구원이자 상처인 가족, 나를 꼭 닮은 낯선 타인들에 대해.
_본문 중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아주 단순한 것을 원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폭력에 익숙해진 채 살아가면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로운 어떤 상태와 그것을 나눌 상대를 꿈꾼다. 혈연과 이해 관계와 도덕과 존재 이유 따위를 다 떠나, 다만 곁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사랑해줄 그 어떤 대상, 환란의 땅에서 생존 경쟁에 지쳐 돌아왔을 때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만으로 ‘걱정 마, 난 널 무조건 좋아해’라고 말해줄 그 누구. 그 이름을 ‘가족’이라고 낮고 조그만 목소리로 불러보면 어떨까
_본문 중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족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가족은 사랑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다!’라는 권위적이고 강제적인 명제가 주는 부담 때문이 아닐까. 정작 ‘가족’에 가장 위협적인 적은 가족이 지고지순의 가치이며 영구불변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 판타지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에 다름 아니리라.
-본문 중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아버지를 부정하는 아들은 아버지와 가장 닮아 있고, 엄마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었던 딸은 엄마의 운명을 내림받는다. 바라지 않아도 혈연으로 묶인 이 가족 집단에서 우리는 상처주고 상처 받는다. 우리가 이런 상처들을 딛고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길은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개별로서 서로를 볼 수 있을 때이다.

엄마는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엄연한 여성이다. 그리고 나도 엄마와 같은 여성이다. 한때 간절히 그녀의 이해와 배려를 원했던 내가, 이제는 그녀를 한 사람의 여성이자 인간으로 이해하고 돌보아야 할 시간이다.
_본문 중

어떤 심리학자는 현대의 아이들이 불행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부모의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이라고 말한다. 숨어들어 묻힐 형제자매가 없으면 부모의 애증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도 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셈이다.
형제자매는 나와 꼭 닮은 타인이다. 다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이지만, 결코 나 자신은 아닌 것이다.
_본문 중

당신과 내가 만나야 했던 이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족’을 구성하게 될 때 그 필연적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어쨌든 결혼을 하게 되고 한 10년쯤 산 우리 시대 부부들의 자화상은 러브호텔이 넘쳐 나는 불륜공화국, 높은 이혼율과 기러기 아빠로 가속화 되는 가족 해체이다. 그 혼동의 중심에서 조금만 비켜나보자고 김별아는 권한다. 안 불행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을 모색하자고 부추긴다.

하지만 아무리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싸 가지고 과거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모두를 따져가며 누군가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기에 결혼한다. 그 사람의 얼굴을 사랑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가진 경제력을, 성격을, 집안을 사랑할 수도 있다. 키를 사랑할 수도 있고 이두박근을 사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어리석어야 빠질 수 있고, 그 어리석음은 사랑의 유일무이한 원인 이외에 모든 것을 가린다.
_ 중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선택을 넘어 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결혼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두가 덜 상처받고 더 빨리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모두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행복, 그 행복의 형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_ 중

아내 며느리 엄마 그리고 여자
한 명의 여자는 아내와 며느리, 엄마와 딸이라는 다각적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결혼을 하고도 엄마의 역할이나 며느리의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전통적 관계를 부정하고 독신을 고집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역할이 많다고 꼭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역할과 역할 간의 관계이다. 그리고 여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관계의 중심에 여자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김별아는 이야기한다.

딸, 아내, 며느리, 그 모두가 여자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갖기 전에도 여자였고 그 이름이 사라진 후에도 여자다. 여자이면서 인간이고 인간인 여자다. 섹시 란제리로도 홈드레스로도 가둘 수 없는 욕망과 의지의 존재이다.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를 두려워하라! W. 콩그리브의 말대로, 사랑이 변해 생긴 증오보다 더 격렬한 것은 없고, 모욕당한 여성보다 더 분노하는 사람은 없을지니.
_ 중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와 아내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 하지만 그 의미와 표현의 양식은 분명히 수정되어야 옳다. 신사임당이 현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그녀 역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깨뜨리는 데 앞장서지 않았을까. 그녀처럼 독립적이고 강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이라면, 분명 그러지 않았을 리 없다.
_본문 중

너를 처음 만났던 눈 오는 날을 기억한다
아이가 자신의 분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소유물이 되지는 않도록, 세상에 나아가 인류애와 박애주의를 가진 당당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아이에게 몸을 떼지 않고 손을 떼지 않으며, 눈을 떼지 않고, 마음을 떼지 않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되 때가 되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김별아는 미리미리 연습한다.

스스로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을 만나 자기의 선택과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나는 그의 인생 무대에서 조용히 퇴장해 주어야 마땅하다. 나는 좀 불쌍한 늙은이가 될 것이다.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얼마간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의 하찮은 존재로서 그가 간단히 뛰어넘을 인생의 허들이 된 것에 만족할 것이다. 내 몸도, 내 손도, 내 눈길마저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는 비로소 자기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_본문 중

나는 결혼 후 한동안 불임 치료를 받고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불임 치료를 받는 여성들의 절망과 희망을 짧게나마 함께 체험했다. 내가 그토록 갖고자 했던 것은 남편과 아내, 아이로 이루어진 번듯한 ‘가족’이나 ‘제도’가 아니었다. 나는 생명을, 스스로를 덜어 어떤 미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일이었다.
_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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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2009)

저자 -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한 권과 장편소설 일곱 권, 산문집 두어 권과 어린이 책 네댓 권을 펴내는 동안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그는 아이와 그녀의 사랑이, 그가 중심이 되어 이루고 있는 가족 관계가,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확장된 관계로서의 가족이 인류애와 박애주의로 연대하는 것을 꿈꾼다.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그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를 넘어선 가족의 참모습이다.
소설집으로 《꿈의 부족》, 장편소설로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축구 전쟁》《영영이별 영이별》《미실》《논개 1,2》《백범》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가 있다. 2005년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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