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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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Feb 13, 2012 - Literary Collections - 29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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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촐하게 살러 시골에 왔다. 저수지 물이 내려다보이고, 산이 품어 안고 있는 땅에 작고 소박한 내 집을 지었다. 시골에 오니 절망의 부피가 줄어들고 비로소 희망이 보였다.”

나는 조촐하게 살러 시골에 왔다.
도시의 삶을 접고 시골로 내려간 예술가의 일상 엿보기

도시의 삶이 끝없이 제 욕망을 팽창해가는 삶이라면, 시골에서의 삶은 조촐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흙과 바람, 그리고 물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자연에서의 삶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하고 예측할 수 있다.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엇 하나 복잡할 것 없는 조촐한 삶이다. 물론 도시가 제공하는 안락함과 편리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도시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교외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대개 그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물꾸물 현실로 바꾼 사람이 있다. 바로 시인 장석주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비평가독서광. 그는 1990년대까지 ‘청하’ 출판사를 직접 운영할 정도로 출판기획자로 명망 높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삶은 늘 심적 허기를 가져다주었고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서른 해가 넘는 서울생활을 뒤로하고 홀연히 안성 외곽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 살 때의 일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나무들을 심고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하나 둘 옮겨 2001년, ‘수졸재’라는 작업실을 완성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를 쓰고 책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누구보다 사치스런 여유를 즐긴다. 느림의 미학이 그를 참된 삶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의식을 압박하는 도시적 삶의 속도에 지쳐 있었고,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많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살고 있지만 진정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은 매우 괴로운 것이다.”(106쪽)

시골에서의 삶을 통해 저자는 “자연의 삶이 주는 단순함과 느림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찾을 수 있었다. 작가 에크하르트 톨레의 “밖이 소란함은 안이 소란한 것이요, 밖이 고요함은 안이 고요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시골에서의 삶은 분주한 삶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그리하여 내 안이 고요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자연이 저절로 주는 깨달음, 그 시간은 내면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이고 고요한 시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혼자 있으면서 고독해지는 시간이 없다면 고요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천천히 행해지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삶. 저자가 인생의 바닥에서 맛본 실패와 좌절의 쓰디씀, 메마른 밥, 그것을 구원한 건 고요와 느림의 삶이었다. 이 책은 시골에서 사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도시생활에 지친, 고독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가져다줄 것이다.

“시골에서의 일상은 느림 그 자체다. 천천히 밥 먹고, 천천히 옷 입고, 천천히 개에게 먹이를 주고, 천천히 산책을 한다. 새로 돋는 잎들 사이로 날카롭게 뻗어오는 빛들을 보는 순간 문득 나는 어떤 고립의 느낌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고립은 그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자에겐 더 이상 고립이 아니다. 가뭄이 계속되었어도 노란 수박꽃 밑에 엄지손톱만큼 작은 수박이 매달렸다. 지금 이 순간 부화하지 않은 것들은 끝내 부화하지 못한다.”(97쪽)

“고독해지는 시간이 없다면 고요 또한 있을 수 없다”
시골의 삶이 주는 느림과 고요, 삶의 지혜

이 책은 크게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시골에 지은 집」은 안성 외곽에 ‘수졸재’라는 작업실을 만들고 사는 작가의 일상을 보여준다. 봄엔 연초록 새잎들이 돋는 걸 보고 자연의 기적 앞에 마음이 경건해지고, 여름밤엔 반딧불이 깜박이는 걸 들여다보는, 침묵 속에서 꿈꾸게 되는 시간의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일. 이를 통해 도시와는 다른, 시골에서의 고요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시골에서의 삶은 단순하며, 한가롭고, 느리며, 느슨하기까지 하다. 시골의 길 위에서 뛰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매우 드물다. 새벽에 일어났다 할지라도 몽롱하지 않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했기 때문이다.(18쪽)

“‘나’는 부자였지만 내 ‘심령‘은 빈곤했다. ‘나’는 건강했지만 ‘심령’은 오랜 피로감의 누적 때문에 만성질환자처럼 빈혈과 탈진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고의적으로 ‘심령’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 내 생의 어딘가 근본적인 데가 어긋나 있다는 신호가 올 때조차 ‘난 아무 문제가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정말 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심령’은 그러지 않았다.”(45쪽)

나는 시골 태생이지만 서울에서 서른여섯 해라는 긴 세월을 살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어서 상속받은 유산도 없었고, 오로지 내 능력에 의지해 살아야만 했다. 삶은 부박하고 고달프고 거칠었다.(...)오랜 방랑을 끝내고 비로소 내 집에 돌아와 눕는다! 그 날아갈 듯한 기쁨, 그 깊은 느낌! 아주 두터운 어둠이 감싸고 있는 새집에서의 잠은 깊고 아늑하다. 새벽에 잠 깨면 집 주변의 어스름한 여명 속에서 물안개를 가사袈裟처럼 휘감고 있는 나무들이 말없이 서 있다. 도시에서 보던 나무들과는 뭔가 다르다. 도시의 나무들은 단지 세월을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삶과 자연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있는 것 같다.(55쪽)

둘째 장「느리게 산다는 것」에서는 시골에서의 삶이 주는 느림과 고요, 침묵의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느리게 산다는 것, 그것은 가던 길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자신’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라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자신의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고 거기에 침묵과 명상의 나이테가 그려지게 하는 것”(99쪽)이라 말한다.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걷는 일상, 나눔을 베풀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삶. 느림은 현대인의 조급한 욕망들을 유연하게 만드는 그리하여 사유할 수 있게 만드는 장, 현실에서 결핍된 갈증을 해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젊음은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자들의 훈장이다.(126쪽)

나는 직선으로 뻗은 도시의 길보다 구불구불한 시골길 걷기를 좋아한다. 나는 물가를 하염없이 걷는다. 이 순간을 걸으며 내 몸은 천천히 이 순간을 빠져나간다. 도시인들은 ‘천천히’에 관한 한 문맹이다. 그들은 빨리 먹고, 빨리 만나고, 빨리 헤어지고, 빨리 걷는다. 그들은 ‘빨리빨리’에 중독되어 있다.(126, 127쪽)

셋째 장「추억의 속도」와 넷째 장「사막 어딘가에」는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의 조각들을 이야기한다. “잊혀져간다는 것, 망각. 세월이 흐르면 뇌세포는 쥐고 있던 기억의 끈들을 놓아버린다. 망각은 때때로 인생의 숨은 상처들에 대한 치유의 한 형식으로 주어진다. 어떤 기억들은 잊혀져감으로써 고요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준다.”(171쪽) 사람들을, 일들을, 사물들을, 내가 살아있음을,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었던 기억들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고요한 침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 안겨주는 기쁨은 날카롭고 크다. 강요당하는 삶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잠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고, 일하고 싶을 때 미친듯이 그 일에 매달려도 좋은 자유로운 삶이 정말 좋았다(...) 나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이 모든 세계의 아름다움을 흠뻑 맛볼 수 있는 것은 살아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286, 287쪽)

『고독의 권유』는 지난 2001년 ‘그림 같은 세상’에서 출간된『추억의 속도』의 개정증보판이다. 점점 더 복잡해지고 각박해지는, 메마른 현대 상황에서 ‘고요’한 시간은 더욱 절실한 부분이다. 이렇듯 바쁜 일상에 쫓겨 사는 이들에게 고요를 환기시켜주고자 책에 내용을 추가/수정, 구성을 새롭게 하여 ‘다산책방’에서 재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고요한 시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고요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고요 속에서 사람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과 차마 하지 않으면 안 될?일들의 분별이 나타난다. 고독을 권하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면 존재의 심연에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다. 고독에 처하지 않는다면 고요도 있을 수 없다. 시골생활에 만연한 느림의 미학, 그 느림을 즐기며 사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왜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지, 고독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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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2012)

저자 - 장석주
저자 장석주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비평가독서광이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_(Unitas BRAND SEASON II Vol. 18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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