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리더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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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폴리오, Jan 5, 2004 - Business & Economics - 26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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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의 시대, 카리스마 리더 조조가 보인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 실업자 급증, 청년 실업자의 포화 상태...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리더로서의 조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지금까지 조조는 우리에게 ‘간신’, ‘간웅’의 이미지로 남겨져 있다. 그렇다면, 


“사실 조조는 매우 재능이 풍부한 인물이며 적어도 영웅이란 대접을 해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마음 깊이 경복하고 있다. 조조는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뒤에 올 시대를 개척한 영웅이며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조조야말로 중국 역사에서 몇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영걸의 하나이다.” 중국의 대문호 노신의 이러한 평가나 


“조조는 백성을 사랑하였고, 헐벗고 굶주리며 살다가 죽는 인간의 모습을 가련하게 보았다. 더욱이 냉혹하고 잔인한 권력세계에서 다른 인물들처럼 무능력을 감추려고 도덕을 앞세우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구해 그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난세를 극복하고 세상을 평정하는 능력을 보여줬다”라고 평가하는 청나라의 대학자 이탁오의 말은 무엇인가.


실제로 조조에 대한 이토록 새로운 시각은 1959년 중국 역사학회에서 조조에 대한 재평가를 논의하는 등 여러 학자의 매우 다양한 견해로 이어져 현대 중국에서도 ‘조조의 위상 높이기, 조조의 재평가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조조는 과연 ‘동양의 마키아벨리’인가, 난세를 평정한 뛰어난 리더이자 승리자였는가.



첫째, 조조는 ‘인재등용’에 목숨을 걸었다.

조조가 가장 중요시한 점은 철저한 ‘능력 제일주의’였다. 그는 이 기준을 근거로 인재를 기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그들을 최대한 아끼고 배려하여 성과를 이끌어냈다.

심지어는 그들이 적과의 내통 사실이 발각되어 상대편 진영에서 그들의 배신문서가 발견되었을 때조차, “나조차도 이번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는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하며 과감히 용서했다. 그의 이러한 면은, 적의 장수인 관우를 모셔놓고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며 공을 들인 대목에서도 내보인다. 결국 관우는 조조가 준 적토마를 가지고 달아나버렸지만 조조는 언제나 관우편이었다.


조조의 무기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능력’이었다.


둘째, 조조는 ‘공로는 실무자에게 있다’는 신념을 철저히 실천에 옮겼다.

전쟁에서의 공로는 자칫 장수나 고위직에 있는 이들이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조조는 지위가 높지 않은 부하들 가운데서 공을 세운 경우도 잊지 않았다. 이런 점은 관도대전이 끝난 후의 조치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건안 12년(207)에 조조는 원소의 잔당과 관서 지방을 모두 평정하고 난 뒤 포상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을 무찌른 지 어느덧 19년이 흘렀다. 우리가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 어찌 나 개인의 공로겠는가? 이는 곧 그대들의 힘이었다.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필코 훌륭한 그대들과 함께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따라서 나 홀로 그 공로를 누린다면, 어찌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서둘러 모든 이들이 세운 업적을 파악하여 작위수여와 포상을 행하도록 하라.”


조조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휘하 막료들의 뛰어난 지략과 장병들의 목숨을 건 분투였다. 조조는 이런 점을 잊지 않고 헤아려 대대적인 포상을 실시하면서, “공로는 실무자에게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조조는 항상 “부하의 공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따름이다”고 아낌없는 배려를 했다.


셋째, 조조는 관료들의 ‘정책 이해’를 정책 성공의 기본으로 두었다.

조조는 어떠한 정책을 실행하려고 할 때 우선적으로 관료들이 정책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관리들의 가장 큰 병폐는 정책의 본질적인 면에 동조하지 않고 그저 소신 없이 따르면서 시늉만 내는 것으로 이런 경우, 일은 이미 그르친 것과 다름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관리들의 복지부동은 큰 병폐이고 이는 면종복배로 이어질 것이며, 그러한 관리들 밑에 있는 백성들은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따르지 않고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정도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생각을 갖게 마련이라고 조조는 지적하고 있다. 


넷째, 조조는 ‘인간경영’에 탁월했다.

조조의 일급 막료였던 곽가는 상관으로서 조조의 진면목을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리고 있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관도에서 원소와 싸우기에 앞서 그가 조조에게 했던 다음의 말은 조조의 ‘인간경영’이 얼마나 뛰어난지 한눈에 보여준다. 


“예로부터 커다란 과업을 이루고 못 이루고 하는 이치는 이렇습니다. 실로 재능이 있는 지도자는 세력이 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지기 마련이며, 그렇지 않은 지도자는 지금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한고조 유방과 초패왕 항우의 존망에서 익히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공(조조)과 천하를 다툴 만한 군벌은 원소뿐입니다. 원소의 인물됨은 겉으로는 너그러운 듯하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고 부하에게 쉽게 일을 맡기고 완전히 믿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명쾌하고 구애됨이 없어 오직 그 사람의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십니다. 바로 공이 부하를 부리는 지도자의 능력에서 앞서는 것입니다.


또한 원소는 머뭇머뭇 망설이며 결단성이 없어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큰 일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고 임기응변에 능합니다. 이것은 바로 공이 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에서 앞서는 것입니다. 원소는 군대를 통솔함이 느슨하여 명령의 계통이 서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군사들이 비록 많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공께서는 법령이 명확하고 상벌을 확실하게 행하시니 군사들은 비록 많지 않으나 모두가 명령 하나에 복종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 있게 싸웁니다. 이것은 바로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결국 승리를 얻는 전략에서 단연코 앞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소는 대대로 명문이었던 가문에 의지하여 은연중에 지혜가 있는 것처럼 꾸미려 하고 명예에 집착합니다. 그러므로 능력보다는 명성만 높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부하들을 대우하며, 그들이 능력을 다해 일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공께서는 자신은 검소하면서도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칭찬과 상을 조금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충성스럽고 바르며 실속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의 부림을 받고자 하니, 이것은 진정한 마음을 얻는 덕으로 앞서는 것입니다. 무릇 공께서는 이러한 장점을 지니시고 천자를 보좌하여 순리에 따라 불의를 징벌하고 계십니다. 하오니 원소 따위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다섯째, 조조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였다.

조조는 매사에 철저하고 과감했다. 조조는 마키아벨리보다 1천여 년 전 인물이다. 어떤 점에서 조조는 마키아벨리보다 훨씬 권모술수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어 ‘동양의 마키아벨리’ 정도로 인식되는 일면도 있다. 그러나 ‘권모술수적인 이념가’에 그친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조조는 권력과 성공을 이루기 위한 책략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난세를 뚫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는 점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한편으로는 훨씬 인간적이고 관대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조가 부드러운 성향의 인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거칠 것 없는 성격에 철저했으며 과감하게 인생을 주도해나갔다. 


“난세에는 부하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돼라”고 주장하였으며,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건인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의 한 장면에서는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지는 않겠다”고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조조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한 번은 조조가 원소와 어울려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집에 몰래 들어갔다. “도둑이야!” 하고 조조가 외치자 결혼식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제각기 겁을 먹고 도망쳤다. 둘은 집안으로 들어가 신부(新婦)를 겁탈하고 도망치게 되었다. 겁을 먹고 도망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원소와 조조는 서둘러 달아나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원소가 가시덤불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원소는 빠져나올 수 없어 조조에게 구원을 청했다. 조조는 원소를 구해주기는커녕 마을 쪽을 보고 “도둑놈이 여기 있다”고 외쳤다. 이 소리에 질겁한 원소는 죽을 힘을 다하여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와 무사히 도망치게 되었다....

또한 조조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인물은 과감하게 제거했다. 그의 이러한 면모들은 조조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항상 인간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측은지심을 가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섯째, 조조는 철저한 실용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건안 원년, 무장(武將) 조조가 정치가로서 자신의 기반을 다지며 천하통일의 대사업에 나서게 된다. 조조가 이렇듯 승승장구한 배경에는 조조의 철저한 실용성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정책 시행이 있었다.

일곱째, 조조는 천하경영의 뜻을 문학으로 펼친 감성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오로지 자신의 야망을 달성시키고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병란이 있을 때마다 백성과 병사들의 아픔을 마음 깊이 느끼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조는 그의 두 아들(조비와 조식)과 더불어 문학에 있어서도 예전부터 유행한 고루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담하게 자기류(自己類)를 개발한 공로자였다. 청나라의 대학자 이탁오도 “조조의 본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가 내린 포고령이나 문학 작품은 커다란 몫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인간의 슬픔과 고뇌를 읊은 시는 그가 철저한 실용주의자이면서도 다정다감한 감성적 인물이었다는 점에 놀라움을 던져준다”고 평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렇듯 조조가 지은 수 편의 시와 더불어 조비, 조식의 시가 함께 소개되어 조조의 인간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번뇌, 독창적인 문학성을 함께 살펴 조조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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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2004)

저자 - 나채훈
1947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및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주로 중국 고전서 연구에 바탕을 둔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중국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는 중국 고대 사상의 역사적 자료를 두루 연구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지혜와 처세를 탁월한 시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 ,정관정요,관자요록,삼국지신문,중국인의 발상법,누구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정신,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유비의 리더십,카리스마 리더 조조,조조와 유비의 난세 리더십,하루 10분, 삼국지를 통해 배우는 성공법칙,삼국지에서 배우는 2인자 리더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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