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아, 힘을 내라 - 최남선의 계몽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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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펍코리아, Sep 26, 2011 - Soci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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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서양 문화가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20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갓 30의 젊은 나이에 온 민족의 대표로 3ㆍ1 독립선언문을 기초할 정도로 일찍부터 식민지 조선의 지식계를 주도했다. 30대 이후 역사와 민속학 연구로 방향을 틀고 결국 일제에 협력하면서 일그러진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았지만, 그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해 옥살이를 한 데서 드러나듯이 20대 이전에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열혈 청년이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에 불타 열아홉 살에 잡지 《소년(少年)》을, 스물다섯 살에 잡지 《청춘(靑春)》을 창간하는 등 청년 계몽 운동에 매진했다. 20대 때의 이런 최남선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ㆍ민속학 연구자 최남선이나 친일파 최남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책은 그의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청춘》 시절의 논설 네 편을 모은 것이다. 원문은 1910년대에 발표돼 난해한 한자어로 도배된 것들이라 요즘 사람들이 도저히 읽을 수 없어 부득이 ‘번역’을 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최남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그의 강개 어린 목소리는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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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2011)

저자 - 최남선
1890년 서울의 유복한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8년 일본에서 귀국해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는 등 이 잡지를 거점으로 활발한 저작 활동을 벌였다. 《소년》이 폐간된 뒤에도 몇 개의 잡지를 창간했고 1914년 《청춘》을 창간하는 등 출판 활동을 계속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해 잠시 옥고를 치른 뒤 출옥해 출판 활동을 재개했으나 곧 이를 접고 역사 연구에 주력했다. 1928년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일제에 협력하기 시작해 1938년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본격적인 친일의 길을 걸었다. 광복 후 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1957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시조집 《백팔번뇌》와 역사ㆍ민속학서 《단군론》, 《조선 역사》, 《고사통》, 《조선상식문답》 등이 있고, 《백두산 근참기》, 《금강 예찬》, 《심춘순례》 등의 기행문도 유명하다.

역자 - 이재황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한 뒤 주로 언론계에서 일했다. 한국방송(KBS) 기자와 출판사 편집장을 지낸 뒤 내외경제신문과 중앙일보 기자로 있었다. 동양문화와 한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다루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이미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의 오역을 바로잡고 주요 사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태조/정종본기》를 시작으로 《태종본기 1~3》(이상 청간미디어)을 출간했고, 온라인 신문 ‘프레시안’에 한자의 기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저서로 《한자의 재발견》, 《가장 빨리 외워지는 한자책》(이상 뉴런) 등이 있으며, ‘100분 고전’의 《악한 인간과 착한 시회인》을 번역했다. 그 밖에 《달러》와 《엘도라도, 혹은 사라진 신의 왕국들》(이상 AK) 등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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